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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아톤' 13년 후…고단한 삶속에 피워낸 작은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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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푸르메스포츠 작성일18-09-14 15:27 조회9,28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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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의 배형진(왼쪽)씨와 36살이 된 2018년의 배 씨. 사진=SKT/CBS·푸르메재단 공동취재팀 

 

2005년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영화 말아톤. 초원이 역을 맡은 배우 조승우의 탁월한 연기를 통해 그 전까지 사회적 관심에서 벗어나 있던 우리 사회 발달장애인과 자폐인에 대한 이야기를 사실적이고 감동적으로 그려내며 5백만 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 모았다.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은 고단하기 그지없다. 극복이란 표현을 쓰기도 어려울 만큼 발달장애 자녀를 품고 살아가는 부모의 삶은 높다란 절벽을 끝없이 마주하는 것과 같다.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 배형진(36) 씨와 어머니 박미경(59) 씨의 일생 역시 벽을 넘고 또 넘는 과정 같았다.

배 씨는 여전히 건강하고 밝은 에너지를 내뿜고 있었다. 마라톤은 더 이상 뛰지 않지만 워낙 운동을 좋아해 꾸준히 등산과 수영을 하며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   

 

오랜만에 배 씨와 어머니 박 씨를 만난 곳은 경기도 분당의 어느 카페. 한 복지재단에서 발달장애인의 일자리를 위해 설립한 곳으로, 배 씨는 2012년부터 이 곳에서 일하고 있다. 

 

◇ 발달장애 자녀 일평생 돌보며 심신이 무너지는 부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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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분당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바리스타 배형진 씨와 어머니 박미경 씨. 사진=CBS·푸르메재단 공동취재팀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든 배 씨는 2년 전부터 어머니와 떨어져 그룹홈에서 다른 발달장애인 3명과 함께 지내고 있다. 여전히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어 하고 어머니와 함께 출퇴근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제는 혼자 밥도 잘 챙겨먹고 필요한 생필품을 챙겨 어머니에게 주문해 달라고 부탁할 만큼 독립된 삶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중이다.  

영화에서 많은 관객의 마음을 아리게 했던 "우리 초원이보다 하루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는 어머니의 말에는 발달장애인 부모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책임과 보살핌의 고단함이 응축되어 있다.

영화가 개봉한 지 13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수많은 발달장애 자녀의 부모들은 내 아이가 나보다 하루만 더 일찍 죽기를 바란다. 아이의 장애가 마치 자신의 원죄인 양 부모가 끝까지 안고 가야 한다고 숙명처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박 씨도 오랫동안 몸과 마음이 무척 아팠다. 그동안 잘 견뎌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숨이 턱 막혀왔다. 통증이 온몸을 뒤덮었고 우울한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30년 넘도록 자식에게 모든 걸 쏟으며 붙어살다 보니 정신적·육체적으로 한계가 온 것이다.  

"숨을 제대로 쉬기 어렵고 온몸이 너무 아팠어요. 서 있기도 어려울 만큼. 그 때 처음 형진이와 내가 이제는 떨어져야 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건강해야 형진이를 오래 돌볼 수 있는데 이렇게 나 자신을 외면하고 힘들게 놔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요즘은 그나마 활동보조인의 지원을 종종 받을 수 있지만 10년 전에는 24시간 내내 오롯이 어머니의 몫이었다. 발달장애 아이들은 어머니 의존도가 지극히 높기 때문에 친척에게 잠시 부탁하기도 어려웠고, 어머니 혼자 여행을 간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지금은 꽤 나아졌어요. 형진이가 독립생활을 시작한 지 3년쯤 되어 가요. 형진이가 그룹홈에 있는 주중에는 저 혼자 병원도 가고 도서관도 가면서 낫고 있는 중이에요. 도서관에 가만히 앉아 책을 읽는 나 혼자만의 시간이 가장 행복해요. 하지만 많은 분들의 관심 속에 있는 저와 형진이도 이렇게 힘든데 다른 부모들은 얼마나 힘들고 막막할까 속상한 마음도 들어요."

◇ 단순노동도 감지덕지…갈 곳 잃은 발달장애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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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반복 작업을 힘들어 했던 배형진 씨. 카페 일도 만만치 않지만 그룹홈 생활로 자립을 꿈꾼다. 사진=CBS·푸르메재단 공동취재팀 


배 씨의 자립을 준비하는 과정 역시 언제나처럼 어려웠다. 어머니와 아들 서로가 적응을 못했다. 강원도 원주의 집에서 분당의 직장을 2년 동안 함께 오가며 버스 타는 연습을 했다. 이제는 배 씨 혼자 잘 다니지만 그래도 어머니와 함께 원주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월요일을 가장 기다린다고 한다. 

2017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발달장애인은 23만 명. 전체 장애인의 11%에 불과하지만 일자리와 자립훈련이 필요한 30세 이하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전체 장애인의 62%가 발달장애인으로 그 비중이 상당하다. 우리 사회가 발달장애 청년과 부모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꾸준히 일을 하며 스스로 돈을 버는 훈련은 꼭 필요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발달장애인이 적성에 맞는 일을 찾는 건 엄두도 못 내죠. 일자리 자체가 워낙 적으니까요."

배 씨의 첫 직장은 직업재활시설을 통해 소개받은 악기제조 공장이었다. 취업했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장애인에 비해 운이 좋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매일 막힌 공간에서 조립일을 반복하는 것을 배 씨가 무척 힘들어했다. 그마저도 악기공장이 문을 닫자 다시 집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새 일터를 어디서 구해야 하나, 막막한 심정이었다. 

한 번은 화초를 가꾸는 일이 발달장애인의 정서에 좋다는 말을 듣고 몇몇 부모와 함께 경기도의 어느 농원에서 일한 적도 있다. 출퇴근에만 몇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몇 달 만에 포기해야 했다. 농사일을 차근차근 가르쳐주고 각자에게 맞는 업무를 찾아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단순작업만 시키면서 일꾼 취급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다짜고짜 주어진 반복작업에 금방 지치고 힘들어했다.

◇ 일과 생활 결합된 대안 모색해야 

때로는 어머니가 보기에 '이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 싶은 경우에도 자녀들은 나름의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다. 자신이 받은 스트레스를 표현하거나 해소하는 방법을 모르다 보니 참고 참다 어느 순간 확 쏟아내곤 한다. 갑자기 울거나 그릇을 깨거나 뛰쳐나가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타인이 보기에는 '왜 저럴까' 의아하지만 아이들은 아주 오래 힘들어하다가 자기만의 표현방식을 찾는 것이다.

"안쓰럽죠. 사실 직장 일이라는 게 다 힘들잖아요.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힘들어도 참으며 일하는 것처럼 너도 일은 해야 하는 거라고 반복해서 가르치고 설득해요."  

최근 장애인복지 현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그룹홈은 대다수 발달장애인 부모의 간절한 소원이다. 가장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홀로 지속할 수 있고,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생활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부모들끼리 돈을 모아 자체적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자치단체가 담당 사회복지사를 배치하지 않으면 그림의 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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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형진 씨를 모델로 삼은 영화 '말아톤' 포스터 


박 씨는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식물을 만지고 키우는 일이 발달장애인의 정서에 아주 좋을 것"이라면서 푸르메재단이 추진하는 푸르메에코팜 사업이 정말 마음에 든다고 한다. 그리고 "발달장애인의 일터와 그룹홈이 결합된 모델을 우리 사회가 고민해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일본이나 유럽 선진국은 직업재활센터와 그룹홈을 함께 운영하는 사례가 많잖아요. 지역주민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도 있고요. 발달장애인이 자기가 좋아하거나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부모와 떨어져서도 혼자 살 수 있는 훈련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 말이에요. 우리나라는 그런 모델이 거의 없어서 정말 부러웠어요." 

◇ 인간답게,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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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경 씨는 "발달장애 청년이 스스로 행복한 삶을 꾸려가도록 우리 사회가 뜻을 모아달라"고 호소한다. 사진=CBS·푸르메재단 공동취재팀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달장애 청년이 학교를 졸업하고 갈 수 있는 곳은 복지관이나 주간보호센터 정도다. 그나마도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장기간 대기를 감수해야 한다. 부모들이 어디든 일할 곳만 찾을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모들이 보기에 일하는 아이들이 부럽겠지만 정말 본인들도 행복해 할까 생각하면 잘 모르겠어요. 발달장애인은 아무리 경증이라도 타인이 보기에는 그냥 장애인이에요. 그러니까 다양한 직무를 제시 받지 못하지요. 아이들이 취향에 잘 맞는 일을 찾고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일자리가 생기면 좋겠어요."  

배 씨는 작은 돈이라도 스스로 벌어 가족에게 선물도 하고 주위 사람에게 감사와 칭찬을 받으며 자존감을 키운다고 한다. 이런 과정은 발달장애인에게 매우 중요하다. 

흔히 발달장애인이라고 하면 아무것도 모를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무례한 사람에게 상처받고 험한 말을 들으면 움츠러드는 것은 매한가지다. 오히려 한 번 받은 상처가 훨씬 오래 가는 편이다. 이들에게 성취감과 자존감을 회복시켜주기 위해서도 더 많은 사회참여 기회와 일자리가 필요하다. 

"중증장애인도 일할 수 있도록 교육과 적합한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고 살아가며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이 발달장애인 자립의 첫 걸음이니까요." 

아들이 홀로서기의 힘겨운 첫 걸음을 내딛은 지금, 박 씨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요즘은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할까 생각해요. 그동안 형진이만 보느라 스스로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문제예요. 다른 엄마들도 아이와 떨어져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지면 좋겠어요. 저는 요즘 도서관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 작지만 소중한 행복을 찾았어요. 형진이의 삶도 매 순간 행복하기를 바라면서요." 


출처: http://www.nocutnews.co.kr/news/5028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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